생명이 살아있는교회-25회

From: "MKPC" <kwangbongchung@pleasantonkorean.com>
Subject: 생명이 살아있는교회-25회
Date: July 7th 2023

제15장 생명이 살아 있는 교회의 예

생명이 살아 있는 교회는 많이 있을 것이다. 다른 교회의 예를 들을까 하다가 부족 하지만 필자가 경험한것을 예로 드는것이 좋겟다고 생각 해서 소개 하게 되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교회당 건축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신탄진에서 다른교파 교회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역주민가운데 지방 유지 들이 출석하는 교회들이었다.신탄제일장로교회는 대전제일장로교회 남전도회가 19 64년 3월29일 김영익 전도사를 중심으로 개척을 시작하였고 장용덕강도사가 1964년 11월 22일 부임하여 1965년 9월 1일 40평 예배당 기공에배를 드리고1966 년 3월 10일 입당예배를 드렸다.장용덕강도사는 1967년 5월3일 사임하고 후임으 로 정관봉강도사가 1967년 6월13일 충북노회에서 부임하였다.
교회가 부흥하여 좌석을 늘려야할 처지가 되어 왔다.
교회당을 건축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저 교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을 건축하자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시작하였다. 교회에 오는 도로를 먼저 확보해야하는 처지가 되어 대지를 매입하고 교회당 부지를 매입하였다. 1970년 10월2일 제일차 건축헌금을 하여1974년6월 24일 제4차건축헌금을 하여 1975년 9월28일 완공하였다.
빈손으로 시작할때 당시로는 최신식 으로 빨간 벽돌을 사용하여 지하일층 지상 이층 백오십평의 예배당으로 건축하였다.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건축한다는 것을 실 감하였다. 나는 내 조상적부터 물려 받은 아주 좋은 밭을 팔아다가 신구약성경을 한권 사서 기념으로 간직하고 전부 건축헌금을 하였다.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탄진에 주둔한 공병대가 대민사업 봉사로서 자갈 모래를 금강에서 실어다 산데미처럼 쌓아주었다. 곁에 있는 밭에 쌓인 자가과 모래를 교인들이 나와서 대야나 박겟스를 동원해서 줄을 지어 서서 현장으로 옮겼다.건축을하는 중에 힘이들어도 교인들이 증가하였다. 전교인들이 열심히 헌금에 참려하였고 교인들은 기뻐하며 봉사했다.1976년4월20 일부터 대전노회가 본교회당에서 회집되였고 정관봉목사가 대전노회장으로 피선되 었다.

10 메터 50에서 떨어지는 사건

1970년대 신탄제일교회를 건축할때의 일이다.
당시의 건축으로는 잘 짓는다고 지었다. 철근 콩크리트를 세우고 지하와 지상 이층으로 세웠다.안벽은 세민트벽돌로 하고 밖은 붉은 벽돌을 쌓게 되었다. 교회당 높이가 10메타50센티다. 이층꼭대기에서 벽돌을 쌓을때의 사건이다. 내가 시내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교회당으로 향하여 올라 가면서 일하는 일군들을 바라보니 아무도 안보인다.왼 일일까 인부들이 많이 있어서 일을 해야 할터인데 무슨일인가 의문을 가지면서 집에 왔다. 건축현장에는 아시바가 높이 매여 있고 꼭대기에서 일하기 위해서 철판들은 가로 놓여 있다. 땅바닥에는 돌들이 널려 있고, 철근토막, 버려진 못들과 나무판대기 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현장에는 아무도 없다.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으니 오늘 추락사고가 생겼다는것이다.
10메터 50의 꼭대기서 일하든 인부가 발판을 잘못 디뎌서 땅으로추락했다는것이다.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만일의 경우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면 큰일이다.당사자 는 어떻게 하며 가족들은 어떻게 하며 교회당 이메지는 어떻하며 교회당 건축은 어떻게 되며 등등 단번에 복잡한 생각이 떠 올라 왔다. 그래서 추락한 인부는 어떻게 되었느냐 ?어데로 갔느냐?
앞에 있는 병원으로 갔단다.
정신 없이 병원으로 달려 갔다
오늘 교회당 일하다 추락한 환자 어디 있느냐?
이 병원에 없고 시내 큰 병원으로 갔다는것이다.
아 큰 사고가 났구나 그러니 큰병원으로 갔겠지. 어느병원으로 갔느냐?
도립병원으로 갔단다.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으로 달려 간다
참 큰일이다
사고가 났으니 건축이 진행 될수 없을 것 같다.
하루 인부 품싹이 500원 할때다. 돈이 없이 믿음으로 시작한 교회건축인데 이일을 어찌하나? 하나님이 도와서 공병대 추럭을 봉사로 동원하여 자갈 모래를 실어다 건축을 하고 건축헌금을 여러차레 하면서 지어가는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는가보다. 건축의 동기가 교인의 좌석도 좁지만은 교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자고 생각하고 진행 한것이데 큰 시험에 빠젓구나 이 일을 어찌 처리하나 등등 생각하면서 도립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원 관계자에게 이런 이런 환자 어데 있느냐 물으니 그 환자 집으로 보냈다는것이다. 왜 보냇느냐 하니 멀쩡한 사람이 와서 높은데서 떨어 졌다고 진찰해 달라기에 보니 찰과상 하나도 없는 사람이 요청하기에 기분 나빳지만 진찰해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집으로 돌려 보냈다는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대화동 그 인부네 집으로 갔다. 그 부인을 마났다 .어디 있느냐 하니 뭐 한다고 밖에 나갓단다. 괜찬으냐 하니 괜찬타는것이다. 그런데 왜 신탄진 병원에서 도립병원으로 왔느냐 하니 그 의사가 진찰해보드니 이상이 없다하니까 의사 진찰이 잘못됐을것이다. 그 높은 꼭대기서 추락 했는데 이상이 없다니 큰 병원으로 가보자하고 갔지만 또 이상 없다하니 어쩌느냐 하는것이다. 속으로 하나님이 천사를 동원하여 안전하게 붇잡아 주셨구나 감사합니다 하엿다 그리고 교회에서 위로금을 약간 주었고 그분도 다음날 계속하여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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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혈증 사건

패혈증에서 건짐받은 사실을 소개 하겠습니다.
1972년 막내 딸을 출산하고 마지막 출산임으로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 요양을 잘할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달 뒤에 큰 변고가 발생 하였습니다. 산모는 갑작이 소변을 쏟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요를 다 적시고 혼수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두워진 밤에 가까운 곳에 의사를 불러 치료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밤중에 택시를 불러 겨우 통행금지전에 대전 성모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응급실에 입원을 하고 당직 의사가 진찰을 하였습니다. 의사는 말하기를 이 병은 사흘 안에 죽는 패혈증이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살린 예가 없고 미국에서도 팔십퍼센트가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패혈증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독균이 피에 들어가 피를 고름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지며 심장의 기능이 멈추고 오줌을 만드는 신장기능이 마비되어 지며 소변을 누지 못하게 되어서 독균이 속에서 점점 불어나서 죽는 급성 패혈증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정신이 아찔해 젔습니다. 나는 의사에게 돈은 얼마든지 댈터이니 고쳐 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돈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닙니다. 환자의 상태는 위급한지라 우선 침대를 사십오도 각도로 세워 발을 천정 쪽으로 올리고 머리는 바닥쪽으로 향해 놓았습니다. 이유는 피가 머리에 가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팔과 다리는 차가웠습니다.입술 근처만 약간 따스한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밤을 새우며 투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아니 했습니다. 나는 오늘이 부활 주일이 되었기 때문에 설교를 하러 가야 했습니다. 어제 밤에 갑작이 일어난 결과 누구에게 설교를 부탁할수 없었습니다. 나는 환자를 뒤에두고 교회에 가서 사실을 알렸습니다. 교인들은 밤을 새워 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뻐쓰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가는 중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죽었을까 살아 있을까 만일 죽었다면 에미 없는 애들은 어떻게 키우며 나의 목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눈물을 흘리며 가다가 내려 걸으면서 살앗을까 죽었을까 하는 생각중에 어느새 병원에 도착 하였습니다. 여전히 응급실에 침대는 사십오도 각도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담당의사는 내게 절망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고칠수 없으니 집으로 돌아 가라는것이었습니다. 나는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환자 병실이 없으니 특실로 가겠느냐 묻기에 그러겠다고 하였습니다. 부활 주일 오후가 된것입니다. 밖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나는 비가 오는 그 밤에 잘못인줄 알면서도 내가 잘 아는 한의사를 방문자로 하여 두 사람을 불러 진찰 하였으나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이제는 포기 하는가 생각이 들면서 밤 중에 담당 의사에게 호소하였으나 의사도 답답한지 자기가 의과 대학에서 배운 책을 가져다가 내게 보이면서 틀림 없는 패혈증이며 자기는 졸업논문을 바로 이 패혈증에 대해서 썻다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상층 복도를 거닐다가 비내리는 창가에 기대어 흔들리는 마음을 잡으려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성경 카드 한장을 뽑았습니다. 그 성구는 구약 성경 이사야 26장3절의 말씀이 었습니다. “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는 마음에 주님을 다시금 생각하고 읽고 또 읽었었습니다. 눈물이 카드에 떨어져 얼룩진 카드가 되었습니다. 그 때가 새벽이었습니다. 나는 생각에 병실로 가서 환자에게 평소에 내가 잘못햇든것을 용서를 빌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마지막이 다가 오는 것으로 생각이 들엇습니다. 병실에 들어가니 장모님과 후원하든 권사님이 절망의 한숨을 내어 쉬었습니다. 여전히 발은 위로 하고 머리는 아래로 숙어진 채 말 없이 누어 있는 아내의 손과 발을 만져보니 차가웁게 느껴 왔습니다. 아내는 아직은 의식은 있는듯 하였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잘못한것을 용서 해달라고 했드니 그도 뭔가 의식했는지 두눈 에서 눌물이 흐르는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 하고 첫마디를 했지만 눈물이 흘러 입을 열어 더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구약에 나오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이 들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을때 십 오년을 더 살게 연장 한것 처럼 하나님 이사람을 십팔년을 더 살게 해 주십시요 이 사람의 몸에 흐르는 독성이든 피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 피로 대신 채워서 흐르게 하여 주시고 신장 기능이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십시요 등등 기도를 하였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날이 밝아 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십팔년을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은 당시에 히스기에에 대한 내 기억이 언듯 잘못 말해 진 것이지만 어쨋든 그렇게 기도 했습니다. 장모님도 권사님도 눈물로 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날이 밝아 오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차고 있는 고무 호수줄에 소변 방울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신장 기능이 작동한다는 신호 였습니다. 소변 한 방울이 그렇게 귀중한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염치 불구 하고 새벽에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잠에서 깬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든 의사는 두 무릅을 탁 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이제 됬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하루에 소변을 많이 배설 하였습니다. 물론 회복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독성이든 고름피를 제거하여 씻어 내고 주님의 피로 채워서 살게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사람은 영과 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
방언이란 다른나라 말을 할때 와(행2:9-11)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할때에 방언이라 한다(고전12:2). 영이 있는 결정적인 증거다.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한다(고전14:14-15)
사도바울은 방언을 누구보다 많이 하였다(고전14:18) 그리고 방언하기를 권하였다(고전14:5). 방언은 믿지 않는자들을 위한 표적이다(고전14:22).방언은 통역을 해야 알아듣는다(고전14:13).

방언의 기능이무엇이냐?
하나님의 사정을 하나님의 영이 가장 잘 알듯이 사람의사정도 사람의 영이 가장 잘 안다(고전3:11). 사람의 사정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자를 위하여 예비한 모든것은 사람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다(고전2:9)
오직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전2:10).
하나님의 깊은것을 아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고전2:12)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에게 말로서 교제 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알고 있는것을 사람의 영이 알게 되는것이다. 말이 안통하니 비밀이 된다.그러니 통역이 필요한것이다. 통역이 없어도 방언은 내 영에게 유익한것이다. 영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다.그래서 바울 사도는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 하였다. 나는 1970년대 어느해 어느 달인지 모르나 경기도 오산리 기도원을 갔다. 나혼자서 밤에 기도굴에서 기도하였다. 기도하다 보니 내 혀가 이상하게 꼬이는것 같이 느꼈다. 나는 방언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지 아니한고로 내가 혹시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가 해서 겁이 났다. 그래서 중지 했다. 한참뒤에 다시 기도하니 또 같은 증상이 생겼다. 그래서 혹시 방언 이라는것인가 생각을 하였다.만일 방언이라면 한번 해보자 하고 계속하다보니 볓시간을 하게 되었다.

한국 목회에서 방언을 계속할 필요가 없어서 아니했다.

미국 목회를 하면서 목회가 어렵워지고 생활이 어려워 지면서 옛날 했던 방언을 다시 하게 되었다

살수도 없고 죽을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 질때, 두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게 될때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 마음에서는 찬송이 들려 온다. 그래서 평안을 가지게 된다.

가슴에 스트레스가 몰려올때 마치 전기 충격을 가하듯이 양 팔을 통해서 가슴 복판으로 밀려 오면 설수도 없고 앉을수도 없는 안타까움이 파도가 일어 날때도 방언 기도하면 평정이 된다.

눈을 뜨면 하루 종일 고통이 심할때도 밤이 되여 방언기도하고 나면 단잠을 잘수 있어서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화급한 일을 당해서 당황할수 있는 처지가 되어 하나님께 방언 기도하면 지혜를 주신다. 그래서 일처리를 해가는것이다.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역사였다는것을 알게 된다.

이 모두는 하나님의 영과 내영이 교통함으로 알게 하시는것이다.
방언 기도는 유익한것이다.

귀신이 떠나가다

신탄제일교회에서 목회할때 일어난 이적사건이다
하루는 수요기도회를 끝내고 집에와서 쉬는늦은 밥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전화를 받으니 다급한 여자 목소리다. 지금 엄마가 이상하니 빨리 자기 집에 와달라는것이었다. 왜 그러느냐 하니 울면서 하는 말이 자기 엄마가 이상하다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덕성 장로님과 교인 몇을 데리고 연초제조창 앞에 새로 생긴 거북 마을로 갔다. 그집 대문깐에 들어 서자마자 이상하게 어떤 귀신작란같은 것을느끼었다.방문을 열자마자 맞은편 구석을 보니 어떤 사람이 담료를 머리에 푹 뒤집어 쓴채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동동거리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두 딸들은 그 어머니를 둘러싸고 앉아서 엉엉 울고 있다. 잠간 사이에 경위 이야기를 애들에게 들었다. 오늘 오후에 회사에서 퇴근한 후에 어머니가 이상해젓다는것이다. 마귀역사인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잠사후 그여자는 벽장 문을 열고는 다락으로 훌쩍 뛰어 오른다.숨는것이었다 내 생각에 저 귀신이 우리를 피하는구나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도 벽장 다락문을 열고 올라서니 다락 바닥에는 망치, 톱, 칼 들이 놓여 있다. 위험하구나 생각이 들어 옆으로 치웠다 그 여자는 앞으로 배를 쭉 깔고 머리를 앞에 쌓인 솜과 옷 뭉치인지 무엇인지 그 속에 머리를 틀어 밖고 안보인다. 나는 이 여자를 끌어 내려서 귀신을 쫓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그 여자의 양발목을 쥐고 잡아빼니 그 여자가 끌려 나온다. 담요를 여전히얼굴에 감고 두손으로 감싸고 서 있다.그래서 안방 아랫목에 주저 않치고 빙 둘러 앉아 찬송과 기도를 하였다. 마침 뒷집에서는 무당을데려다가 굿을 하는모양이다 , 마음속에 대결이다.우리가 이긴다 생각하고 찬송하였다.그여자는여전히 머리에 담요을 쓰고 있다.얼마간 찬송을 하다보니 여자가 담요를 벗는다. 내생각에 아 무엇인가변화가 있구나 직감하였다. 잠시후 그여자는 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입 속으로 따라 하는듯 느꼈다. 그러드니 휴----하는 소리를 낸다. 그여자는 무릅을 꿇는다. 잘못했습니다 한다. 왜 벽장으로 올라갔느냐 물었다.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 무서움증이 확 달려들어 피했다는것이다. 기도자들이 들어가니 마귀가 떨었다. 왜 오늘 이런 일이 벌어 졌느냐 물었다. 그는 오늘 직장에서 개 같은년이 교회를 다닌다고 놀림을 받았단다. 교회나온지 몇주 되었다. 같은 남자에게 세번 이혼 세번 결혼을 할정도였다.똥개라고 수군수군 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만 하였다.그여자는 온전해 저서 제 정신이 들었다.다음날 시내를 다녀서 집에 오는길에 그 집에 가니 직장에 출근하였다.

이삿짐 차 앞을 가로막다

신탄제일교회를 건축하여 헌당한다음 나는 목회지를 옮기려 하였다.
건축하는동안 하도 힘들어 좀더 편안한곳으로 가 보려 한것이다.
그래서 연결 된곳이 청주 복대 교회였다.
당시 교역자 이동은 대개 먼저 이동한후에 서류를 처리하는 때여서 나는 청주에 다음달 몇일에 차를 가지고 와서 이삿짐을 실어 가라고 하엿다. 물론 교회에는 비밀로 한것이다.
그래서 한주간 전에 나는 교회에 나의 이동 사실을 발표 했다.
교회는 야단이 났다.
정해진 날에 이삿짐 차가 밖에 왓다는것이다.
나는 차 구경도 못했다.나를 데릴러온 장로님도 못보았다
교인들이 나를 방에서 나갈수 없도록 했다. 그 당시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이삿짐차 앞을 어느 남자 집사님이 가로막다 못해서 차 앞 땅 바닥에 들어 누웠다는것이다.
이유는 교회당 건축하느라 고생만 했는데 보낼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햇는지 볼수가 없었다.
이삿짐 차는 할수 없이 되돌아 갔다.나를 데릴러 왔던 장로님을 이십년이 훨신 지난후에 그 교회에 가서 만나서 사과를 했다.

특급 열차가 서다

한번 마음이 들뜨게 되니 가라 앉지를 못한것이다
이번에는 서울로 가기로 작정을 햇다
그래서 서울 에덴교회로 내정이 됐다.
그 교회 당회원들을 만나서 이동하기로 정했다
당시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목회지를옮기려는 목회자들이 많았다.
내게도 그런 심리가 작용했다.
나는 역시 교회에는 비밀로 했다.
그리고 어느날 서울로 갈것을 광고 했다
교회는 또 야단이 났다
서울 간다는 주일날 새벽으로 기억한다
어느 남자 집사님이 새벽 열차를 타고 서울 그교회에 가서 목사님은 못온다고 통보를 햇단다. 들린 말로는 가서 싸웟다는것이다. 결국 나의 서울 진출은 좌절되었다.

특급열차 스톱(간증)
대전명성교회(통합)박경룡 장로

이 간증문은 당사자 박경룡장로님(한국대전 명성교회장로)이 2014년 보내온 것임을 밣혀둔다. 원본은 나의 간증록 신앙의 여정에 철해두었고 참고로 타자를 처서 보관한다.

간증내용
기도로 [열차(새마을호)]를 세우게하고 도중에서 내린 사실입니다.

때는 1982년1월에, 당시 대전/신탄제일교회에 서리집사(나이38세)로서, 한창 새 벽기도시간때 마다 정관봉담임목사님에게 큰은혜를 받고 신안생활과 믿음의 기쁨 을 맞보고 있었던중에 주일 아침에 갑자기 목사님께서 서울 목동지역소제의 교회로 떠나신다는 장로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너무 당혹스럽고 황당하여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그때의 마음은 목사님이 떠나시면 영이 죽을것 같았고, 어린시절 우리 형제가 어머니말씀 안듣고 싸우거나하면 "어머니께서 다른 데로 간다고 할때 나는 어쩌나 하며 놀랐던 것과 같은 마음 상태이였습니다.

그 당시 선임 김상순장로님께 " 왜 떠나시게 하시냐고 " 항의 조로 따저보고, 이미 결정이 되였고 서울교회에 내일 월요일 이사 가신다고 약속이 되였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 마음이 그하고 이때 시각이 오전 10시 10분 경이였습니다. 이제는 목사님에게 곧바로 전화하여 "못가십니다. 가시면 안됩니다"는 전화 간청에 목사님의 대답은 똑 같았고, 이미 1부 9시 예배에 광고 까지 다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이제는 어쩔수가 없구나! 힘이 다 빠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하나님 방법은 없을까요?

순간 정목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교인들의 반대를 연명으로 서명 작성하여서 서울교회에 제출하겠다"고 하였더니 할려면 해보아라, 그렇게 해도 안될 터이니! 하는 전화상의 표현이 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용기를 내여 11시 주일 낮예배에 축도가 끝나자 마자 당돌히 사회상앞으로 나가서 전 교인들에게 "정목사님 이임반대서명을 호소하고, 서명을 받았습니아. 시간이 급합니다. 서명명단을 서울교회에 저녁예배시간 전에 전달 통보되어야 하기에, 남선교회회 장 이제황집사를 대동하여, 고속버스로, 택시로 목동소재 교회에 도착하니. 져녁 예배가 시작되고 설교중이었습니다.

설교중에 긴급광고 내용을 종이에 써서 강단에 제출하였고, 설교하시던 목사님?( 누구)께서 읽어보시더니 , 당혹스러움으로 예배를 끝내시고, 곧 바로 회의를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나는 강력히 항의 할 량으로, 회의 결과를 기다히는 끝에 .의외로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드디어 그들의 허락?1 통보를 받았다.

이젠 됐다. 뛸듯이 기뿐마음으로, 대전에 전화를 드렸고. 서울기차역에 오니. 열차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밤11시 차펀 밖에 없기에. 일단 승차하고 보니. 대전역 도착은 01시 통금에 걸리는 것이 너무 걱정되였습니다. (그당시 밤통근적용시기). 대전역 대합실에서 통금해 제 시간까지 기다려야되니, 겨울 추위에 여관에 갈려면, 역앞의 나쁜 분위기도 걱정 되고 큰문제 걱정앞에서는 생각지도 않었던 문제가 닥처오고, 열차가 천안을 지나고 내려올수록, 마음이 절박해집니다. "하나님 어떻해요, 큰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이 열차를 신탄진역에 잠깐 멈추게 해주신다면,,,…. 열차는 조치원을 지나 부강역을 지날때,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몇번이나 드나들면서 기도하곤 하였다.

새마을 밤열차는 내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전 속력으로 달리면서 신탄진역 도착전 역인 매포역 역사를 스치고 있었고 드디어 신탄진역을 1키로정도 남긴 금강 철교 위를 달리는 것이였솝니다. 나는 열차 통학을 해보아서 열차 바퀴의 소리로 봐서는 전속력으로 달리도 있고, 신탄진역에 멈출 기미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어 하나님이 이 기도는 안들어 주시는구나. 전속력의 열차는 드디어 신탄진역 역사 본건물의 역샤이름을 내 눈으로 읽어내리게 하면서 그냥 통과하는 것이 아니곘어요!!

속도가 조금만 느리면, 일행이 없으면, 옛날 실력으로 뛰어 내릴수도 있겠는데., 순간의 착찹한 마음이 교차될때.. 열차가 역사영역을 왖전히 벗어난 지점 (동선닭집,재조창분기점)에서 순간 열차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드 는 것이 였어요. 이때 객실에 앉아 있는 이제황집사에게 빨리 나오라고 하고, 출입구에 급히 나오니 열차가 거의 서행상태이기에,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보면서 내리라"고 하는 순간, 이집사 발이 땅에 닫자말다 열차는 순식간에 급발차하는 것이 었어요. 이때 나도 몸이 딸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가까스로 열차에서 내리게 되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차는 멀리 끝만 보이고 우리 둘은 역사의 영역을 벗어난 지점에 주님의 천사의 도움으로 꿈같은 기적을 맛 보았습니다. 온주위는 하얀 겨울눈으로 덮여 있었고, 하늘의 달빛은 보름달의 환함이 찬양 하였슴니다.

통금지역, 통금시간과 아량곳없이 200미터 떨어진 집에 둘어오니, 꿈만 같은 현실앞에 마음이 흥분되어서 잠이 들지를 못했습니다.

아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런것이구나, 저같은 것이 주님의 도구가 될수도 있구나!! 감사와 감격의 눈믈로 그때를 회상하며, 주님께 영광를 돌림니다.

2014년4월 20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대전명성교회장로 박경룡 씀

여자를 데려 오다

풍한 방직회사를 다니는 노조회장이 이유를 모른채 살이 빠지고 몸이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양을 한다고 절 에가서 얼마간 있었다. 그러나 병은 났지 아니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열심이 있는 강 집사님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몸이 회복 되어 갔다 그는 새벽 기도회에 참석을 열심히 하였다. 믿음이 들기 시작을 하였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주일성수를 하게 되었다 그 부인도 교회에 열심히 출석을 해게 되었다 그 집에 문제가 터 졌다
아내가 말도 없이 남편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 준 것이다.
노조 지부장이 절에 가서 수양을 하는 동안에 생긴 일이다
남편이 뒤 늗게 알게 된 것이다
지부장이 친구에게 돈을 반환을 요구 하게 되었다
친구 대답이 기가 찬 것이다. 돈을 차용하지 아니햇다고 잡아 떼는 것이었다. 차용 증서 없이 빌려 주었던 것이다 부부 싸움이 시작 된 것이다
한법은 그 집에 심방을 가게 되었다
부인이 보이지를 않는다 어데 갔느냐 물으니 목포 친정으로 갔다는 것이다 자칫 잘 못하다가는 가정 파탄이 에상 되었다.
그래서 작정을 하였다
내가 목포에 가서 데리고 오겠다 단 약속을 해 주겠느냐? 한다고 한다
데려 오거든 야단은 치되 용서하라고 했다. 아내가 돌아 오거든 종이에 아내의 잘못을 써라 그리고 지부장도 용서 한다고 써서 나에게 주어라 나는 평생동안 그 편지를 열어 보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 나이가 든 장로님에게 연락을 해서 목포행 완행 열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기차는 목포역에 도착 하였다.
주소를 따라 그 집을 찾아 가는데 언덕 밑에서 그 집을 보니 초라한 집이 눈에 들어 온다 나와 장로님은 다짐을 하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데리고 집으로 가야 한다고 다짐을 하였다. 대문이라것이 삽작문이다. 해는 목포의 서산을 향해 내려 꽃는다. 시간이 없다. 마당에 들어 서서 계십니까? 대답이 없다. 또 불렀다 계십니까? 방안서는 밖께서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보니 목사와 장로니님이 서 있는 것이다. 문을 연다 깜짝 놀란다. 닷자곳자 집으로 갑시다 준비하고 나오세요 하니 주저 주저 한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나와요 하니 애기를 둘쳐 업고 나온다. 우리나 그 여자분 사에는 말이 없다. 앞서가니 뒤 따르거니 하면서 목포역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 갔다. 열차에 좌석이 없다. 그래서 곳간 차에 세 사람이 올라 탔다. 당시에는 고 간차에도 사람이 타고 다니던 때다. 그 여자분은 저 쪽에 쭈구기고 앉아 있고 나와 장로님은 이쪽에 깔게를 깔고 앉아 밤 길 여행을 시작 하게 되었다. 그 여자 분은 집에 가면 남편이 어떻케 할까 것정과 근심이 있겠지 푹 수그린 얼굴이 말을 하는것 같아 보였다 우리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논산 역에 도착 해서라야 이제 논산에 왓으니 조그 더 가면 대전역에 도착 할것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 뒤에 회덕역이고 그 다음이 신탄진역이다 마음에 자세를 가다 듭는자 몸을 약간 흔든다. 어느덧 신탄지 역에 도착 하였다. 4시 새벽기도 시간이 가까워 왔다. 교회로 먼저 갈까 집으로 갈까를 생각 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생각할 시간을 주고 마음을 간추리고 밤새껏 달려 왔으니 피곤두 할것 같아서 새벽기도 장소에 들렸다 5시면 새벽 기도 시간이다 그 녀의 아파트 문을 두드리니 모조 위원장이 문을 열고 나온다 우리는 그여자를 인게 하고 새벽기도를 위하여 교회로 돌아 왔다. 교인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 다음날 그 집에 가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나니 편지가 든 봉투를 내게 준다. 나는 약속대로 성경 책 속에 두었고 오늘날까지 열어 보지 아니 했다.

음모사건

신탄제일교회가 상당히 부흥이 된때에 있었든 시험이다.
사탄도 부흥회를 한다
한번은 대전 시내에 볼일을 마치고 시내뻐스를 타고 오다가 신탄진역 앞에서 내렸다. 역 앞 좌측에는 교인 부부가 운영하는 가계가 있다. 여자 집사님이나온다 피차 인사를 주고 받앗는데 그 여집사님 하는 말이 교회에 큰일이 생겼다는것이다. 무엇이 큰일이 생겼느냐 하니 지금 서대전 경찰서에 야단이 났다는것이다. 무엇때문에 경찰서에서 까지 문제가 됐느냐 하니 바로 정 관봉 목사님 문제라는것이다. 왜 내가 경찰서에서 문제가 되느냐 하니 지금 형사들이목사님을 주목하고 있다는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듣고 보니 큰일은 났다.이 일을 어찌 해야 할찌 캄캄하다.
내용 자체는 완전히 날조된 음모인것을 알았지만 수습을 어떻게 할지가 큰일이었다. 내가 어는 여자 신자와 내 서재에서 어떤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여자가 내 방에 들어 갓다는 것이다.
교회는 술렁 술렁했다
당시만 해도 신탄제일교회는 지역안에서 꽤 영향력이 있었든 때다.
여러가지 돈내는 명예직이 목사에게 주어쪗든 때다.
국회의원으로 출마할려면 그 사람이 손을 은근히 뻗어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 국회에서 상당히 유력한 사람이 그 지역구 의원이었다. 지역구 인사가 돈을 밤에 큰 봉투에 담어 밤에 사댁으로와서 나에게 내 밀었다. 봉투를 보니 봉투가 팽팽하게 든것 같다. 나는 거절하였다. 다시 어느 교장 부인을 통해서 또 전달을 할려고 밤에왔다. 또 거절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예비군을 창설할때 였다.
나는 예비군 군종담당자가 되어 예비군들에게 교육을 시켰다
예비군 중대장을 할려는 사람이 교인중에 둘이 있었다
지역의 모 당의 조직을 맡은 사람이 후원하는 중대장 후보가 있고 다른 후보는 혼자 노력하는사람이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직부장이 내게 자기가 미는 사람을 목사님이 관게기관에 말만하면 지명이 될것이니 후원을 해달라는것이다 나는 곤란 했다 둘다 교인인데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아니한면 교회에 말성이 생길것임으로 나는 둘다 후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거절을 했다.

그런데 이 조직부장은 교회에 열심을 내니 남자반에서 그를남선교회 회장으로 선출을 했다.교회의 어느기관에서 행사를한다면 물질 후원을 하게 되고 어느기관에서 어데 간다 하면 후원금을 주고 체육행사를 한다하면 남녀 체육복을 사다주는등 활동을 하게 되니 자기 사람들이 뭉치게 되었다.

사건 수숩을 할려고 그 여자를 찾으나 집에 없다. 만날수가 없는것이다. 어데론가 피한것이었다. 교회는 아수라장이 되어 간다.
정목사가 간음을 했다. 나쁜 목사다. 몰아 내야 한다. 여기서 모여 수군 수군,저기서 모여 수군 수군, 형사들이 조직부장 집에 왔다느니 지방 유지들이 야단이라느니 좁은 바닥에 소문이 짝 퍼젔다.참으로 큰일이다. 일을 처리해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일할 사람들은 거의 저 사람이 포섭해서 나를공격할 입장이다. 나는 참으로 참담해저서 기도 할수 밖게 없다
나를 아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하도 기세가당당하니 감히 누가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목사님 한 분이전화를 해왔다. 그분은 내가 세례를 준 분이다..
자기가 한번 그여자를 만나보겠다는것이다. 참으로 감사한일이었다.
그 분이 여자집을 찾아갔다. 교회에서 이런일이 일어 낫는데 어찌 된일인지 경위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 여자 신자 말을 들으니 너무나 기막힌 내용이었다. 한번은 이번 소란의 주동자가 자기를 찾아와서 이런 이런 일이 있다고 발설을 하라 하더란다. 자기는 그런일을 못하겟다고 거절을 햇다는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끔찍스러워 피했다는것이다. 이 사실을 말할때 몰래 녹음을 했다. 그 사실을 내게 알려왔다.
당장 그 밤에 그 여자 신자를 사댁에 불러 오게 하였다.
나와 그 목사님과 그 여자분이 거실에 앉았다. 자초 지종을 다 들었다. 완전히 음모를 꾸민것이다.
물론 녹음이 되었다.
다음날 새벽 기도회후에 이 사실을 광고 하였다.
그후 주동자와 극열 가담자는 교회를 나오지 못 하였다
그들이 떠난뒤에 교회는 크게 부흥되었다

불어진 팔 뼈가 붙었다

김금순씨는 신탄진 본토인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하는 분이다.
생활이 넉넉치를 못한처지다.그러나 믿음이 강한 분이다.
하루는 금강 가에나가서 세탁을 할때 자기 딸과 함께 나갓다
어린 딸이 바위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저서 팔이 불어젔다.
뼈가 살갓위로 솟아올랐다
그래서 대전 변외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병실이 정해지고 수술 날자와 시간이 정해졌다. 간호원이 수술을 할려고 환자를 데릴러 병실로 갔더니 환자어린이가 어머니와함께 없어졌다. 수술한대서 나는 심방을 병원으로 갔더니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김금순 권찰의 믿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집에 연락해보니 집에 와서 있는것이다.
왜 왔느냐 하니 김권찰 대답이 하나님이 고쳐줄줄 믿고 집에 왔다는 것이다. 기도 했더니 하나님이 역사하였어요. 불쑥 튀어 나온 팔 뼈가 제대로 원상 복귀 됐다는 것이다. 김권찰의 믿음에 하나님이 역사한것이다.
이런 소문이 저저 퍼져 나갔다

병원이 못고치는 피부병을 하나님이 낫게하였다

이주예 라는 여성도가 있다 그는 피부병을 가지고 있었다. 병원을 찾아 다녀도 고치지 못했다. 그당시 강신미 집사님은 자기 외숙모인 그를 교회로 인도 하였다. 지하실에서 우리 기도자들의 기도할때 주님이 완전히 고쳐주었다
신탄 제일장로교회에는 중이 바랑망태기를 벗어 놓고 예수 믿기로 한사건이 있었고 오랜세월동안 보살생활을 했던 은행 지점장 부인이 회개하고 불교서적을 목사인 내게 가저다 주고 후에 전도사이며 선교사가 되었고 어느 큰 회사의 노조지부장이 원인을 알수 없이 몸이 말라가서 이병원 저병원 찾아 다녀도 치유가 되지 않아 절에 들어가 수양을 해도 고치지를 못하든 그를 예수 믿고 고치는 사건이 생기고 딸만 넷을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하여 고민하든 가족이 교회에 나옴으로 아들을 얻게 되었든 사건과 불임증으로 애기를 갖지못하든 여자분이 기도함으로 임신하여 둘을 낳는 기적이 일어 난 사건과 어떤 여자분은 꿈에 자기집 용마루에 있던 큰 구렁이가 방바닥으로 툭 떨어지는것을 본 뒤에는 정신이상이되어 헤매다가 맞은편에 있는 신탄 제일교회교회 목사를 청해다가 기도하하고픈 생각이들어서 청해다 기도 했더니 깨끗해진 사건등등 기사 이적들이 일어나서 교회가 부흥 하였다. 이적들의 소문이 퍼저 교회가 부흥 했다

입신하는 일이 일어났다
1) 남들이 초청하여 집회를 부탁하고 부흥회를 다니기시작하고 기사 이적이 일어났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남이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 때에 된일이다
그 교회는 작은 돌들과 흙으로 지어진 촌 교회였다.
나는 하루는 설교를 마치고 강사 숙소에 들었다.
사람이 내게 급히달려 왔다.지금 어떤 여자분이 교회당에서 죽은듯 하단다 내가 나가보니 입신 상태였다.가만 두어라 일어날것이다. 잠시후 그는 일어났다. 그 교회는 건축을 하려고 헌금을 하게되었다
한번 헌금으로 예배당을 건축을 할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었다고 들었다

조갈증환자가 치유되었다

충남 천원군 북면 중앙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든때에 일어난 기사다
첫날밤부터 나는 물을 많이 마셨다. 둘째날밤에는 설교전에 작은 주전자 하나를 다 마셨다. 내생각에 나는 부족하고 저들은 갈급하니 내가 몸이 달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였다. 셋째 날 밤에는 설교전에 한주전자를 다 마셨다.그리고 두번째 주전자 물을 마실려하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교인들에게 여러분 심령이 이렇게 갈급한것을 내게 알려주시는데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봅니다 하고는 물을 마시고 설교를 마치고 숙소로 갔다.다음날 저녁식사를 초대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유인환씨 댁에서 강사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장로님과 함께 가게 된것이다. 눈이 조금씩 날린다. 마루 상기둥에 기대서 잠시 쉬는 데 주인이 나오드니 인사를 한다. 목사님 저때문에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위해서 수고한게 뭐가 있나요 하였더니 사실 제가 어제 저녁에 제 조갈 병이 났엇습니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여러분 심령이 갈급하여 갈증이 나는가봅니다 말할때 저 목사님이 자기 병을 지고 가는가보다 생각을 했는데 그 순간 부터 조갈 병이 없어 젔습니다하는것이다. 그래서 나를 저녁 초대를 하게 됐다는것이다.

출산을 못 하던 박 씨가 출산을 하다
년령니 35세쯤 된다. 송촌리에 살았다. 얼굴이 이쁘장하고 열심이 잇는 성도다. 자기의 소원은 출산하는 것이란다 새벽기도회에 매일 출석을 하였다. 남편 송선생도 함께 새벽기도회에 참석을 하였다. 어느날 딸을 출산했다는 소식이었다.그 후에 아들을 얻었다
온 교인들이 축하를 하였다.

열병이 치유 되었다
2000년12월3일(주일)
주일 예배후 권순옥, 권은경부부가 식사도 아니하고 집으로 간다.왜 그러느냐 하니 딸 유리가 아파서 가야 한단다. 나는 이분례 권사님을 밴차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어머니와함께 집으로 오다가 노스게이트 근방까지 왔다가 아프다는 권유리 심방을 가기로 하여 켄트 집으로 갔다.어둠 직전이었다.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권은경부부가 다 있다. 엄마가 애기를 데려 왔다.땀이 전신에 흠뻑 젖어 있다. 열이 뜨끈 뜨끈하다.권은경씨는 약사다.몇일전부터 열이 나서 약을 복용하였으나 여전하단다.권은경씨가 애기를 무릅에 앉고 내가 그 애기 머리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12월 10일 주일에 권은경씨가 기도후 그날밤 열이 다 없어졌다. 신기하다고 말하였다.

다남이를 출산한 사건
연씨는 멋 쟁이다. 흰색 구두를 신고 깨끗한 양복을 입고 부인과 함께
교회를 다닌다. 그집에는 딸만 네 형제를 두었다. 소원이 있다. 그래서 넷재 딸의 이름을 다남이라 했다. 다음 출산 때는 남자를 낳았으면 해서 딸의 이름을 다남이라 지었다. 다섯번째 출산을 하니 아들이었다. 교인들 사이에는 우리 교회에 나오면 아들 낳고 딸을 낳는다는 말이 돌았다

스님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루는 당회실에 내가 앉아서 무엇을 하는 중에 누구가 밖에서 당회실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보니 어떤 스님이다. 깜짝 놀았다. 키가 중간쯤 되어 보이고 나이는 오십여서 될듯 하다. 등에는 바랑망태를 지고 있다. 들어 오라해서 소파에 앉았다. 왼일로 스님이 교회를 오셨습니까?
그는 조금 망설인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자기는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멀지아니한 곳에 있는 중이라 한다. 그런데 자기는 더 이상 절에 있지 않고 교회를 다니겠다 한다. 당시에는 스님이 개종하는 예가 종종 신문에 나는 때 였다. 그는 바랑 망태기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두툼한 책이다. 자기는 개종을 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이 책이 필요가 없다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받으라고 건네 준다. 받아 보니 불교의 경전인 팔만 대장경이다 교인들에게 광고를 했다. 그 책은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다

불교 신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분은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시뉘가 대단히 열심이 있는 신탄 제일 교회 집사님 이었다 전도를 받아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 진해 모 은행 지점장 부인이다 후에 들으니 러시아 선교사가 되었다

음성 나환자들이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되었다
연초제조앛 앞에 거북 마을이 있다. 철길 위에 우치하고 있는 조그마한 허름하게 지어진 조그마하고 허름한 서너채의 집이 있다 음성 나환자들이 사는 마을이다. 문둥명이 낫은 사람들이지만 손이 찌그러 들고 눈이 험상 굳게 변하고 입이 돌아간 사람들이다. 한번은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탄 제일교회 목사님이 한번 방문해 주실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방을 가자 하니 나환자 촌이라 조금은 꺼려 지고 교안들이 목사님이 나환자 촌에 다녀 왓다하고 스근 스근 할거 같기도 했다. 그러나 목사에게 여청이 왓으니 예수님도 나환자를 고쳐 주었으니 결심을 하고 심방을 한덕성 장로과 함께 가게 되었다. 가서 보니 적은 방에 대여섯이 앉았다가 일어나 영접을 한다 찬송을 부르고 설교를 했다. 점심때가 되었다고 감자를 쪄서 상에 밭혀 내 놓는 것이다. 속으로 또 망설여 진다. 먹기도 그렇고 안 벅을수도 없다. 안 먹으면 무시 한다고 생각 할것 같아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를 하고 손을 내밀어 한개를 잡으려 하니 나이가 든 장로님은 점심을 갓 먹고 왔다면서 감자를 사영 한다. 대여섯은 각기 한개씩을 들어 먹는다. 나도 한개를 먹고 낫더니 한분이 감자를 찌그러진 손으로 덥석 집더니 나에게 내어 밀면서 더 먹으라 한다. 참으로 곤란 한 생각이 들었다. 한개만 먹고 나면 저들이 무엇이라 할것 같아서 주는 것을 받아 먹엇다 문제는 다음 주일날이다
예배시간에 보니 나환자 육칠명이 뒷 자리에 안자 있다. 그들을 환영을 해 주었다. 그들은 떄때로 신탄 제일교회에 출석을 해서 예배를 같이드렸다
이제는 아주 큰 일이 벌어 졋다
한번은 그들이 왕골로 짠 깔개 방석 다섰장을 만들어 교회에 기증 한다고 가지고 와서 강대상 밑에 두면서 간단에 세 의자에 하나씩 놓고 목사님 설교할때 발 밑에 하나를 두고 설교를 하라는 설명이었다. 그대로 강대산에 올려 두었다. 나는 상용을 하기로 작정 하고 강대상 앞에 놓고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대표기도를 하는 장로님 들에게 사용하라고 할수도 없고 사용하지 말라고 할수도 없게 되었다. 각자에게 맡길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소문이 나기를 신탄 제일교회에 나가면 문둥 병도 치유된다는 소문이 퍼졋다는 것이다. 1967 년도 신탄 제일교회에 부임하던 전주일 주보를 보면 출석 한 총 교인수가 19명이었다. 교회 성장은 미국 시애틀에 까지 소문이 났다. 1984년 미국 시애틀 노회의 초청으로 이민을 오던 마지막 주일 주보를 보면 장년 재적수가 1,450명과 학생까지 2,000 여 명으로 성장 한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라고생각한다

  • 미국장로교 한인 은퇴목사 및 사모회 제11대 회장 정관봉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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