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목회론-4

From: "MKPC" <kwangbongchung@pleasantonkorean.com>
Subject: 생명목회론-4
Date: October 10th 2023

제2장 회개를 생각해 보았다

회개 해야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안다.
나를 알기 위해 회개 해야 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회개 해야 한다.
회개 하지 아니하면 가로 막혀서 알수가 없다. 가로 막힌 것을 치워야 안다 예레미아 5:25 “너희 허물이 이렇한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오는 좋은것을 막았느리” 허물과 죄를 회개해야 좋은 것을 받을수 잇다.

엡 4: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하심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였다. 의와 진리의 거룩하심으로 새 사람이 되어진다. 의는 믿음으로 된다          (롬 3:25, 5:1, 갈 2:16).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벧전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였다. 하나님이 믿음을 의롭게 보아 주셔서 생명이 있는 말씀을 영안에 집어 넣어서 살린 것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것을 구원이라 말하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사형수로 복역하는 중에 국가 에서 특사를 내려 출감 하였다 하자. 그는 자유인이 되고 투표권과 상속권과 자유이동의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살인 방화를 저질렀든 마음과 성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서 회개가 필요 하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지만 내 마음에 죄가 기록 되어 있고 봉함 되고 저장 되어있는 것은 씻어내야 한다. 한걸음 더 나가 인간 육체 안에 죄가 자리 잡고 있어서(롬 7:20) 나도 모르게 원치 아니하는 악이 계속 솟구처 나오는 육체의 사욕이 있으니 이것도 해결 해야 하는 과제이다. 하나님이 회개의 은혜를 주셨으니 회개을 하여야 한다. 이제 회개를 구분하여 보았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하였다. 성경을 보니 죄 사함 받는 회개(눅 24:47)와 생명 얻는 회개(행 11:18)가 있다. 복음을 믿으려면 회개 해야한다(막 1:15). 회개하면 복음이 믿어진다. 회개의 정의를 하나님

께로 방향을 돌려 마음에 가진 사상과 원리와 감정과 실제 생활의 방식을 변화시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정관봉, 믿음 얻는법, 95쪽)라고 정의해 보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 되 돌아가는 내용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 보았다. 그것이 회개의 구분이다. 회개에 관한 견해가 다른 것을 알았다. 칼빈은 중생에 포함 시켜 말한다. 즉 회심부터 성화에 이르는 전과정을 중생 이라본다. 벌코프는 중생과 회심을 구분한다. 생명이 심어지는 것을 중생이라 보았고 회심 혹은 회개는 중생 후에 마음에 변화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나는 벌코프의 설명을 따른 것이다. 나는 우선 단어로 본 회개와 내용으로 본 회개로 구분하였다. 내용으로 본 회개는 성경대로 죄 사함 받는 회개와 생명 얻는 회개로 구분하였다.

제1절 단어의 뜻으로 본 회개

회개를 연구해보니 문자적으로 두 가지 단어로 표현되어있다.

첫째 에피스트레포( )

에피스트레포는 방향을 돌리다, 방향을 바꾸다 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성경을 보면 마 13:15에 “이 백성들이 마음이 완악하여 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 하고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였느니라” 한데서 ‘돌이켜’ 라는 단어가 회개를 지칭한다. 행 3:19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한데서 회개하고 돌이키라 하였다. 에피스 트레포는 두 단어인 에피( )와 스트레포( )의 합성어다. 에피의 의미는 위에, 안에, 의해서, ….의 경우에, 만일…라면, …의 때에, 등의 의미를 가진 전치사다. 스트레포는 …에로 방향을 바꾸다, …의 경우에 전환하다, 변화를 만들다 등 방향 전환을 강조하는 동사다. 그러므로 두 단어를 합하면 …위에 방향을 바꾸다, …...의해서 방향을 바꾸다, ………의 경우에 방향을 변하다, ……...의 때에 방향을 변하다 등을 나타낸다. 회개는 세상 중심의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 생활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사단 중심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생활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 메타노에오( )

메타노에오는 사상과 감정과 의지의 틀(구조)을 바꾸어 변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 메타노에오는 메타( )와 노에오( )의 합성어다. 메타는. …와 함께, …...의 힘으로, …...에 의하여 등을 의미한다. 노에오는 지각하다, 감지하다, 이해하다, 파악하다, 관찰하다, 준수하다, 마음에 품다, 착상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메타와 노에오를 합성한 뜻은 어떤 힘에 의하여 지각이 변하고 이해가 변하고 파악하는 것이 변하고 마음에 품은 것이 변하고 착상하는 것이 변하고 준수하는 것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메타노에오가 가지는 회개의 뜻은 본질의 구조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눅 5:32 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왔노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회개 시키러 온 것이다. 눅 24:47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 될 것이 기록 되었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이 죄 사함을 얻는 회개를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3장2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한데서 회개는 ‘원리와 실제의 변화를 만들라’ 를 강조한다. 세례요한이 당시의 지도층을 향하여 외친 말이다. 마 3:8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사상과 감정의 방식(방법, 양식, 형식)의 변화를 강조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사상과 감정의 표현까지 변화 해야 한다는 의미다. 눅 17:3-4절에 형제가 죄를 범 하거든 경계하고 회개 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 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였다. 하루 일곱 번 범죄하고 일곱 번 용서 해달라 하는 범죄자의 감정은 어떨까 그리고 용서 해줄 사람의 감정은 어떨까 당신 같으면 반응이 어떨까? 이같이 하려면 철저한 자기 죽음이요 사랑이며 자기를 장사 지내야한다. 마음의 감정의 틀까지 변화를 해야 가능 한것이다. 눅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한 것은 회개는 기쁨이 넘치는 변화의 실제를 의미한다.

이상의 두 단어를 종합해서 회개를 정의 해보았다.
에피스트레포는 방향을 돌리다, 또는 되돌아 가다 이고 메타노에오는 원리와 실제의변화를 만들라, 사상과 감정의 변화, 마음과 감정의 틀의 변화, 변화의 실제 등의 의미를 지닌것이다. 이 두 단어를 종합하여 보면 회개를 정의 할수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 마음에 가진 사상과 원리와 감정과 실제 생활의 방식을 변화시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회개는 우선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 마음에 가진 사상과 원리와 감정과 실제 생활방식을 변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는것이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보니 뉘우침이나 후회였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와 다르다. 회개와 혼돈 하지 말아야 한다. 후회는 헬라어의‘메타멜로마이’( )로서 ‘제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 속으로 꾸짓다’ 라고 되어 있다. 예수를 은 삼십에 팔은 가룟 유다는 회개한 것이 아니라 뉘우쳣든 것이다(마 27:3). 스스로 꾸짖는 교인이 있다. 개선과 회개는 다르다. 개선은 잘못된 것이나 부족한것, 나쁜것 따위 를 고쳐 더 좋거나 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련과 회개는 다르다. 수련은 몸 가짐이나 마음씨가 맑고 순수하게 하는것이다. 수양과 회개는 다르다. 수양은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을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는것이다. 독백과 회개는 다르다. 독백은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해탈과 회개는 다르다. 해탈은 얽매임을 벗어 버리는 것이며. 번뇌의 얽어 매임을 벗고 삼계의 근심이 없이 평안하고 조용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자기자신이 주도자가 되어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수 없다. 오늘날 신자 중에는 회개는 아니하고 뉘우치고 개선하고 깨닫고 수련해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을 모르는 결과를 낳는다.

제2절 내용으로 본 회개
성경에서 찾아본 회개는 죄사함 받는 회개(눅 24:47)와 생명얻는 회개(행 11:18)가 있다.

첫째 죄 사함 받는 회개가 있다.

나는 우리집 문간방에 사는 사람에게 하기 어려운 용서를 청한적이 있다. 6.25사변 당시 인민군이 잠시 남한 일부를 점령한때에 있었던 일이다. 인민군들은 청년들을 만나면 무조건 붇들어가서 인민군에 보낸다. 그러니 청년들은 숨느라 볼일을 못 보았다. 인민군이 동네에 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들은 콩밭 사이로 뛰어 들어가 숨든지 산으로 도망을 가곤 하였다. 우리집 문간방 곁에 감나무 한 구루가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 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문간방을 향하여 인민군이 사람 잡으러 온대요 라고 소리를 질럿다. 그랬드니 문간방 청년이 밥을 먹다 말고 문을 박차고 신발도 못신고 맨발로 우리집 뒷채로 돌아 달려가드니 담장을 넘어 순식간에 언덕으로 기어올라 가 곡식 밭 속으로 숨은것이었다. 내가 장난을 한것이다. 수시로 적군인 인민군이 오면 청년들을 잡아 가는데 아마 생사을 걸고 뛰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철부지의 작난이지만 청년에게는 생사의 길인 것을 미처 몰랐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너무 미안하여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영적인 회개의 분야에도 합당한 이치가 있는 것을 알았다

죄 사함 받는 회개에 대한 성경 말씀을 보면 눅 3:3에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여기에 죄사함 을 얻는 회개가 나온다. 눅 24: 47에 “또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 되었
으니” 에도 나온다. 행 5:31에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여기도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라 하였다. 회개도 내가하고 싶다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회개의 은혜를 주셔 야 되는것이다. 딤후 2:25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하며” 한대로 하나님 이 회개의 은혜를 주신다. 회개 할때는 믿어야하는 내용이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 내 죄를 대신하여 주신 것을 믿어야 한다. 고후 5:21 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무죄한 예수님이 죄인으로 되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내 죄를 대신 지신것이다. 롬 3:25-26 에도 설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은 죄를 모 르는데있다. 내가 지은 죄가 언제 무슨 죄를 범했는지 잘 모른다. 그러니 회개 할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가지로 작용하는 것을 찾아보았다. 말씀의 작용을 보면 등작용과 빛작용(시 119:105), 칼작용 (엡 6:17) 불작용(렘 5:14, 23:29), 방망이 작용(렘 23:29), 광선작용(말 4:2), 녹이는 작용(시 147:18), 깨끗케하는 작용(엡5:26, 요15:3), 영과 생명작용(요 6:63), 살리는 작용(시 119:50) 죄를 들어내는 작용(롬 7:9), 생명작용(벧전 1:23) 등등 여러가지 작용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역사하여 찌르고 쪼개고 들어낸다. 히 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였다. 롬7:9에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 나고 나는 죽었도다” 한데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할때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하나는 죄를 깨닫는 것이고 다음은 내가 죽는것이다. 죄를 깨닫고 내가 죽을 존재인 것을 알때에 회개를하게 됨으로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것이다. 들어난 죄는 회개하고 죽은 나는 살려내는 이 두 가지 를해결 해야한다. 두 가지를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며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것을 인간이 볼수는 없으나 처리를 받은 마음은 알 게된다.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과정을 설명한다.

  1. 죄를 깨닫게 한다. 232가지의 죄가 있다(2부 4장 1절- 2절) 죄가 살아 난다는 것은 죄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기록되었든 죄(렘17:1) 책 을 열남 하듯이 자기가 알게된다. 자기 안에 저장 되고 봉함된 죄(호13:12)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자기 죄가 많은 것을 알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거울작용을 하고 빛가운데 다 들어 나게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으면 이런 역사가 일어 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에 일어 나는 것이다(살전 2: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 들어 날 것이 없다. 안 들어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요일 1:10).

성령께서 책망을 한다.
요 16:8에 “그가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하였다. 죄에 대하여 책망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의에 대하여도 책망한다. 심판에 대해서도 책망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책망감이 되기 때문이다. 엡 5:13에 “그러나 책망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하였다. 책망 받고 회개하면 빛이 나타난다.

들어 난 죄를 보고 반응을 하게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망하게 되었도다” 하였고 사도 바울은 그 죄의 갈등을 겪으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낼꼬(롬 7:24) 하였다. 두려워 하고 통회 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도 있다. 죄를 한탄하고 부끄럽게여기고 자기를 밉게 보는 사람도 있다(겔 36:32).

성령께서 보혜사(요 14:16, 15:26, 16:7)로 우리에게 권고하신다. 책망도 하시지만 또한 권고하신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고 씻어 주신다고 말씀하여 주신다. 사1:18 에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 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하였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고 씻어 주시려고 예수님이 흘리신 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우리는 어떤 존재 인가를 성경은 말하고 있다. 벧전 1:2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자…” 인 것이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의 피는 깨끗하게 하는 작용도 하지만 그 피를 뿌림으로 죄를 깨닫게 된다. 깨끗하게 하는 작용을 성경이 말한다. 또 피는 죄인의 마음에 뿌리면 양심의 악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의 피는 죄를 깨닫게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회개자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히 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하였다 한대로 양심에 있는 악까지 깨닫게 한다.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려고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시고 피를 흘려 주셨구나 나를 사랑하심이 이처럼 크시구나 하고 그 사랑 앞에 감복하여 양심에 끼인 악까지 깨닫게 된다. 결국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 위하여 피흘리셨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게된다.

자기의 죄를 직고하게 된다.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죄를 사하시고 깨끗하게 씻어주신다. 자백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의 피로 씻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 사함과 깨끗케 하시는 약속을 하신 바가 있다. 요일 1:7절에 “저가 빛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 하 게 하실 것이요” 하였다. 요일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였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를 깨닫고 고백함이 죄를 씻어 깨끗하게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죄를 다시 범하면 다시 더러워지는 것이다. 다시 회개해야 씻어진다.

2) 죽은 나를 살려 내야한다
죽은 나는 양심을 말한다. 죄악이 양심에 끼인것을 몰랐을 때는 내가 살았다고 자부하였지만 말씀과 피의 작용으로 양심에 악이 끼어 있는 것을 깨닫고 나니 죽은 것이다. 그 죽은 양심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마음에 죄, 양심의 악까지 정하게 씻어내야 정하게 되어 양심이 회복되는것이다. 회복된 양심에는 영의 생명이 작용하게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영이 있는 양심은 하나님을 찾아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깨끗하게 하고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섬기는 것을 말하고있다. 히 9:13-14 에 “염소와 항소의 피와 및 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14) 하물며 영원 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드린 그리스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하였다. 죄가 씻겨진 양심은 청결한 양심(딤후 1:3), 선한 양심 (딤전 1:5, 히13:18, 벧전 3:21), 착한 양심(딤전 1:19), 깨끗한 양심(딤전 3:9)등이 되어 하나님을 찾아가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마 5:8). 회개하고 다시 죄를 범하여 양심이 더러워 져도 다시 회개함으로 회개를 거친 영은 다시 제기능을 찾게 되고 양심은 하나님을 직접 대하는 직관기능(히 9:14, 마 5:8)과 교제기능(고전 14:14-15)과 등불기능(잠 20:27, 고전 2:11)과 마음에 있는 내 영이 증거(롬8:16)를 하게된다. 그러므로 양심이 정하게 되어 사람의 영혼은 제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죄사함 받는 회개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인간의 깨달음이나 수양이나 수련을 함으로 되는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가 하는것이다.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것을 알지못한다. 오늘날 많은 신자가 스스로 깨닫고 개선한 것을 회개 한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양이되는 것이 아니라 염소신자가 된다(마 25:31-46). 신자 중에는 양 신자가 있고 염소 신 자가 있다. 다음에서 생명 얻는 회개를 설명한다.

둘째 생명 얻는 회개가 있다.

자기의 행한 과거의 죄를 회개 하지만 인간은 속에 원치 않는 육성인 죄가 자리잡고 있다(롬 7:19-20). 이 죄가 기회만 되면 분출 하는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생명얻는 회개는 본성 회개라 할 것이다. 생명 얻는 회개는 뒤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다만 여기서는 생명 얻는 회개가 무엇 인지를 설명한다.

성경은 생명 얻는 회개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11장18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한 것을 보면 생명얻는 회개가 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하고 예언도 한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한 말이다. 여기서 생명 얻는 회개란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을말한다. 왜냐하면 육체소욕을 죽이면 성령의 소욕이 강하게 되어 성령충만을 받게 된다(갈 5:17) 육체에 예수생명인 ‘하기우스 프뉴마’( )가 나타나야 한다. 어떻게 예수생명이 몸에 나타나느냐? 예수의 생명을 주는 분은 성령님이다. 롬 8:11 에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 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였다. 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은 성령을 말한다. 성령님이 우리의 육체에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나게 한다.

생명 얻는 회개를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설명해 보았다.
부패한 육성을 죽게 해야 했다.
인간의 부패는 근본적으로 죄때문이다. 롬 7:19-20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하였다. 내 속에 내가 아닌 다른 것이 존재한다. 곧 죄가 있어서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게 되는것이다. 이것이 육체의 성질의 근본 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육성은 부패한 것이다. 마 15:19-20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하였다. 갈라디아 5장19절로 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방지하며 생명이 나타나게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 져야 예수 생명이 몸에 나타난다. 고후 4:10-11 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1)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하였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나의 죄가 죽인것이다. 그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지는 것은 나를 죽이는것이다. 십자가에 죽인다는 의미와 같은것이다.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죄성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다는 것은 본성을 죽이는 작업 인 것이다. 작은 고난이나 큰 고난을 받을 때 내 육체의 성질을 죽이는 것이 필요하다. 고난을 활용하는 것이다. 고난에서 탄식하고 저주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고난을 활용하여 전화위복이 되게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인지 생각하면 알것이다. 기왕에 당하는 고난을 내게 유익하도록 활용하는 것이다. 피하여 산 속으로 갈것도 없고 수양한다고 고고한 자세로 명상할 것도 없고 수련한다고 자기를 자학할 필요도 없고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가장 좋고 복되게 활용하게 하신것이다. 세상 살면서 당하는 그 수많은 고난을 사용하여 더 성숙한 단계로 향상하는 것은 참으로 지혜가 있는것이다. 육체의 성질을 죽여서 예수님의 생명이 몸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 죄가 내재하는 육체의 성질은 허망하고 미련하고 어둡고 우준한 짓을 하는 성질을 말한다(롬 1:21-22). 이 육성을 철저하게 죽여져서 자기는 죄인됨을 철저하게 깨닫고 철저하게 무능한 존재이며 무지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두 손들어 항복 하는것이다. 내가 죽었으니 무능하게 된것이다. 내가 죽을수 없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것이며 내가 죽은 다음에는 순종을 잘하게 된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 하게 된것은 흑암의 권세아래 있게 된것이다.
흑암이 내재 하므로 무지 상태의 원인들이 있게 된것이다. 타락의 토대가 된것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토대가 된것이다. 이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육체의 성질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무의식의 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원인들을 회개해야 한다. 무지의 원인들을 깨 부수어야 한다.
흑암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이다.
골로새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아들의나라로 옮기겻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에베소서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 순종의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서소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히브리서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마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흑암의 권세아래 있는자는 육체의 성질이 사람을 허망하게 하고 미련하게하고 어둡게하고 우준하게한다(롬1:21-22). 육체의 소욕은 가루를 만들어야 한다. 불로 태워야한다. 없이 해야 한다. 죽여야한다. 이것을 회개 해야 한다.

마귀의 권세가 인간을 죄 아래 살게 하였다. 회개할 내용을 준 것이다
회개할 내용은 생명기능의 변질로 본 인격내용을 회개 한다.
영의 기능의변질, 혼의 기능의 변질, 육체기능의 변질, 생활에 주는 변질등 42가지 회개해야 한다. 흑암의 권세 아래서 변질된 것들이다(3부 1장 2절을 참고).

육성을 죽이는 방법이 있다.
인간의 육성은 큰 고통을 당한다든지 징계의 고통을 당하면 자연히 자기 잘못을 바라보게 되고 회개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큰 환란과 고통의 환경에서 육성 죽이는 것을 통하여 예수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말하였다 (고후 4:8-9). 바울 사도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다(고전 15:31) 날마다 죽음으 로 죄를 멈추게 된다. 고통은 죄를 멈추게 한다(벧전 4:1) 왜냐하면 큰 고통 의 원인이 죄임을 깨닫게 되니 두려워서 죄를 그치게 된다. 그리고 남은 때를 정욕을 쫓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게 하시는 것이다(벧후 4:2).
고통당하는 것을 징계로 받는 사람은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사생자에게는 징계가 없다. 남의 자식에게 징계할 필요가 없지만 친자식에게는 잘되게하려고 징계를 하는 것이다(히 12:5-10). 이 부분은 9장에서 다시 설명 한다.

내 고통이 아무리 아파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고통에 비길수가 없다. 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은 나의 육체의 육성을 죽게하
려고 대신 고통을 당하신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고 나가야 이 고통을 이 겨나 갈수있었다. 이미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임으로 나는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릅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 길로 가야하며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게 가야한다(히 12:12-13). 그러니 무서워서도 죄를 그치게된다. 나의 육체의 죄성때문에 당하는 고통이므로 육체의 성질을 미워할수 밖에 없었다. 육체의 성질을 부정하며 육적인 죄악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 죽인 것을 육체에 짊어 지는 경험을 해보았다.

육성을 회개한다
첫째는 자기안에 있는 죄를 바라보고 육성에서 나오는 죄를 철저하게 미워하게 된다. 자기의 허망함과 미련함과 어두움과 어리석음과 함께 자기 속에서 나오는 죄 곧 의식과 무의식에서 나오는 죄까지 회개하게 된다. 이때에 회개 역시 철저하게 회개하려고 했다. 먼저는 죄의 명칭을 분명하게 기억했다. 둘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죄패는 내 죄패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한것을 믿습니다.
넷째는 내 마음판에 내가 기억하고 회개하려는 죄가 기록되었으니 주의 피로 씻어 주십시요. 다섯째는 하나님이 가지신 행위책에 기록된 내 죄를 도말해 주십시요. 여섯째는 무슨 무슨 죄를 지은 내 육체의 성질을 미워 합니다. 일곱째는 내가 구체적으로 누구 누구 성함을 부르며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오니 나의 무슨무슨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여덟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 나름데로 철저하게 회개하기 위하여 죄가 연결된 부분을 찾아보니 여덟부분이 된것이다. 내가 성경에서 찾은 나의 죄단어 이백 삼십 이가지를 삼년에 걸쳐 회개하였다. 이때에 성령님을 철저히 의존하고 성령님이 알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신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는데 이제 육체의 소욕을 죽게하였음으로 성령의 소욕이 강하게 작용하게된다 (갈 5:17). 성령의 소욕은 성령 충만을 받는것이다. 성령충만을 받는 방법으로 향하게된다. 기도하고(눅 11:13), 회개하고(행 2:37-38), 순종하고(행5:32),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행 10:44), 안수를 받게된다(행 19:6). 예수님의 생명이 몸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롬 8:11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한대로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에게 역사하여 생명을 주어서 살리신 것 같이 장차 우리가 부활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 몸에 나타나서 죽을 몸을 살릴것이다. 성령이 몸에 부어지는 것은 몸에 예수의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면 성령과 말씀을 쫓는 생활 속에서 은사를 체험하 게 되고 기사와 이적을 보게 되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심을 느끼게 되며 감사가 넘치게 된다. 그리하여 새힘을 얻게 된다(사 40:29-31). 예수님이 내 인생에서 전부이고 소망이며 용기이며 능력이 됨을 느끼게 된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가면 주께서 지키고 인도 하심을 믿게된다. 캄캄한 밤에도 빛 가운데로 가게 되었다. 이런 삶은 성화의 길을 가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 지는것이다. 예수 생명이 나타나면 어떤 증거가 있는 것인지 성경을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있다. 예수 생명이 육체에 나타나면 능력있는 삶이 되어 고난을 이기며 오히려 고난을 기뻐하며 승리 하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바울 사도의 표현을 보면 고후 4:8-9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뚝하게 선다. 왜냐 하면 인간 육체는 약하여 깨지기 쉬운 질그릇 이지만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어 주셨기 때문이라 하였다(고후 4:6-7). 그 빛을 통하여 보배를 우리가 가지게 되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 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하였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하였다. 환란을 이겨 나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환란이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속에 생명력이 작용하고 있는 증거다. 아브라함도 백세나 되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점점 강하게 믿어졌던 것은 속에 생명력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고통스러워도 생명이 살아 있으면 생명의 힘이 작용하여 평안하고 찬송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투옥 되어서도 밤중에 찬미하고 기도했다. 이는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때문이다(갈 2:20). 내 안에서 말씀한다 하였고(고후 13;3)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한다 하였고(엡1;20),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생명이 있다 하였다(요일 5;10). 이 생명력이 승리를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승리의 생활을 경험한다.
육체의 성질과 성령의 싸움에서 성령의 소욕을 쫓는 선을 원하는 성질이 승리한다 (롬 7:24-25). 고난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기 때문에 고난을 은혜 받는 좋은 기회로 알게된다. 나에게 고통준 사람 때문에 은혜를 받게 되었음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을 용서한다. 왜냐하면 나로 하여금 이 큰은혜을 받게 하려고 상대자는 큰 고생을 한것이다. 나 때문에 고생했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용서하게 된다. 마귀가 나를 죽이려고 고통에 몰아 넣었지만 오히려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게 되는것이다. 세상의 악한 것에 대하여 이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기를 이기고 (고후 2:14). 세상을 이긴다(요 2:14). 악한 자를 이긴다(요일 2:13).

회개는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 마음에 가진 사상과 원리와 감정과 실제 생활의 방식을 변화시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마음은 복음을 믿어 새 생명을 얻게된것은 영이 회복된 것이다.
마음에 더러운 죄악을 다 씻어 정하게 됨으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섬기게되는 것은 마음으로 회개한것이다. 육성을 회개하여 자기가 죄인됨과 무능한 존재임을 알게되고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게 되는 것은 육체의 성질을 회개 한것이다.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 나게 되면 새 힘을 얻게 되고 승리의 생활을 하는 방향이 된 것은 영과 마음(혼)과 육체의 생명이 회복되기 위해서 회개를 하고 다는 증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 주셨고 알수있게 창조하셨다.
다만 인간이 변질 되었으므로 회개 해야한다.
오늘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의 바벨탑은 어리석은 면이 있다. 어리석고 교만한 인간이 새 생명을 회복 받으면 창조주 하나님을 알수있다. 겸손하게 자기를 알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 미국장로교 한인 은퇴목사 및 사모회 제11대 회장 정관봉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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